[삼삼오오 수다] 외로움, 즐기거나 혹은 휘둘리거나

계절을 건너 뛴 듯한 추위가 수그러들고, 다시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만약 날씨를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시말서를 한 석장 정도는 쓰게 하고 싶었는데, 적당히 선선한 날씨와 아름답게 물든 가로수를 보고 있자니 그냥 스르륵 마음이 풀리고 맙니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가 진열된 쇼윈도, 딱딱한 구두로 밟기엔 미안한 마음이 드는 여린 낙엽들, 짙은 갈색의 커피 향기가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요즘은 바야흐로 가을, 가을, 깊은 가을입니다. 
 
 
그런데, 가을만이 부리는 고약한 심술이라도 있는 건지, 매년 이맘때쯤이면 기분이 참 묘해집니다. 딱히 이유도 없이 괜히 마음이 스산하고, 쓸쓸하고, 우울하고, 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외로운 기분이 듭니다. 대체 어떤 까닭으로,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기에 가을은 우리에게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걸까요? 그나마(?) 한가지 다행인 것은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나 혼자 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가까운 지인들의 미니홈피, 블로그,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등등을 둘러봅니다. 
아뿔싸, 이미 가을의 장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절친 A군은 지난 가을 바람과 함께 떠나간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저주하기를 반복하고 있고, 
온라인 친구인 B양은 ‘나 빼고 모두 다 로그아웃 하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라는 다소 손발이 오글거리는 허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사람이란 본래 고독한 존재인 걸..’이라며 인간 본질에 대한 사색도 빼놓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라고 뭐 멀쩡할까요? 하루는 ‘밤공기에서 시원한 가을 냄새가 나-ㅎㅎ’라며 좋아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을은 내게 있어 아릿한 기억이 많은 계절..’ 이라며 감정의 널뛰기를 잘도 하고 있는걸요.^^; 
 
 
얼마 전 한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직장인 가을증후군’이라는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요, 무려 응답자의 76.5%가 가을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을 증후군의 주요 증상이 바로 외로움이었습니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든다'(31.0%)를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이유 없이 우울하다'(21.8%), ‘멍하게 있는 시간이 늘었다'(19.1%)고 응답했는데요. 
응답자의 17.8%는 가을 증후군의 증상이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답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쯤 되고 보니, 가을 증후군을 만만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치겠습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계절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 짓궂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수업시간에 졸지 않으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외로움이라는 감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순식간에 찾아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불한당 같은 녀석이니까요.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있을 때에도 방심할 수 없지만, 특히 일 적으로 묶인 직장에서의 인간 관계에서는 고통이 더하겠지요.
 
 
수많은 상사, 동료, 후배들 사이에서 하하 호호 웃고 있어도 서로가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때, 그 사이에 흐르는 건조하고 푸석푸석한 공기를 느낄 때면 스스로 늘 망망대해에 떠있는 빈 섬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만 지도에 표기 되지 않아서 나의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도무지 다른 섬과 가까워 수 없다는 절망적인 느낌이 드는 그런 순간 말이죠.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사람들에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심해질수록 결국 누구에게나 나타나고야 마는 증상들인데요. 
첫째, 이러다 말겠지-하며 외로움에 몸을 맡깁니다. 감성적이 되어 허세도 부려보고, 고독한 느낌을 한껏 만끽합니다. 둘째, 뭔가 잘못 되었다는 기분을 느끼며 내게 무슨 문제가 있다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더러는 고민 따윈 하지 않고 다시 멀쩡한 상태로 되돌아 가기도 하고요. 
 
 
그나마 여기까지는 다행인데, 이 다음이 문제입니다. 셋째, 외로움에 지쳐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 하지 못합니다. 내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깨알 같은 것도 남산만하게 보는 신기한(?) 능력이 생깁니다. 넷째, 사소한 상처에도 과도한 고통을 느끼며, 자신을 외롭게 만든 사람과 세상을 원망하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다섯째,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그 모든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를 풀 가동 시키고, 스스로 벽을 쌓고 들어앉아 버립니다. 외로움에 휘둘리다 못해 스스로를 타인과 멀어지게 만드는 상황. 
 
저는 이것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외로움의 함정이라 부릅니다. 
 
 
흔히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단절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외로운 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외로움에 눈물 흘리다가도 단 한 사람의 말, 짧은 문자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멀쩡해지는 것을 반복하니까요. 
 
우린 알고 보면 혼자가 아닌데, 타인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스스로 ‘혼자라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 스스로를 고립시켜 더욱 더 외로워 지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홀로 사는 즐거움>산문집에서 법정스님은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거듭거듭 형성되어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혼자 있어도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 때, 다른 이와의 관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혹시 지금 외로움을 느끼신다면, 찬찬히 시간을 두고 내가 고독한 건지, 고립된 건지- 
외롭다고 느끼는 것뿐인지, 정말 외로운 건지- 스스로와 대화를 해보세요. 
 
내면과 대화하는 습관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외로움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막아 줄 겁니다. ^^
 
그리고, 나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는 법을 하나하나 배우면 된답니다. 
외로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기뻐할 정도로요. 
 
 
사실 ‘가을 증후군’은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서 행복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이 감소해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을 느끼게 되는 일종의 ‘계절성 정동장애’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가을 증후군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여행을 간다’ (19.5%), ‘친구, 동료들과 만나 수다를 떤다’ (16.5%), ‘잠을 충분히 자려 노력한다’ (16.3%), ‘운동을 한다’ (16.3%)등을 꼽았는데요, 찬찬히 보니, 뭐 하나 즐겁지 않은 일들이 없죠? 🙂
그래도 스스로가 찾는 이 없는 무인도로 느껴진다면, 섬과 섬 사이에 튼튼한 다리를 세우는 노력부터 일단 한번 시작해 보세요. 말, 눈빛, 관심, 신뢰. 이런 것들이 튼튼한 주탑과 교각이 되어 언젠가는 가고 싶은 섬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다른 섬 사이에 다리가 있다면, 잠시 다리를 가려 보이지 않게 만든 안개가 걷힐 때까지 나라는 섬에 아름다운 야자수도 심고, 다른 이가 쉬어갈 수 있는 그물침대를 만들며 기다리면 될 일입니다. 나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아름다운 섬이 된다면, 누구든 가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요. 
올 가을, 짙은 외로움은 우리 스스로를 더욱 사랑할 기회입니다. 🙂
방송작가 배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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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이 세상을 만드는 힘이다!’ Better Communication을 위해 노력하는 후지제록스의 철학과 혁신, 기업문화, 사람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8 Comments

  1. 율무 댓글:

    요즘 이유없이 울쩍하고 식욕이 증가(?)한게 설마 이것때문이었나요?! 친구들과 더 즐거운 시간을 가져서 어서 가을 증후군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 색콤달콤 댓글:

      율무님~ 저도 요즘 부쩍 식욕이 증가해 방금 빵 하나 드링킹했다는..^^;; 3시 밖에 안됐는데;;;… 그나저나 식욕은 증가하는데 체력은 떨어지는 이 느낌ㅠ.ㅠ 저는 운동으로 가을증후군을 벗어나볼까해요. 율무님도 친구분들과 함께 신나는 가을 보내세요^^

  2. 도레미 댓글:

    누구나 다 외로운 것 같습니다. 짝이 있던 없던 간에
    군중 속에 섞여 있어도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외로움과 고독을 한 번에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요. ㅎㅎ
    바로 문명하시면 됩니다. 문명하시면 외로움 고독 따위 느낄 시간도 없지요. 위에 글 남기신 님께도 추천 드립니다. ^6

    • 색콤달콤 댓글:

      요즘 한창 유행인 바로 그 ‘문명하셨습니다’ 인건가요?ㅎㅎ 저도 문명 한번 해보고 싶은데, 시작하면 인생 퇴갤–; 이라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무서워서 시도를 못하겠네요ㅋㅋㅋ

  3. 반지루 댓글:

    이 공감이 뚝뚝 묻어나는 글. 가을마다 조금씩 그러긴 했는데 저는 올해는 유독 심한 것 같아요. 그래서 바빠지기 모드로 하려고 하고있는데 이제 그러기엔 체력이 좀 딸린다는 사실에 더 슬퍼하고 있습니다. 아흑!

    • 색콤달콤 댓글:

      맞아요. 회사일 끝내고 취미생활 좀 해볼까.. 해도 피곤한 게 직장인이죠ㅠㅠ 전 날 저녁에 뭐라도 좀 하면 다크가 턱까지 내려오는 저질 체력! 이 가을엔 운동을 시작해야겠습니다. 하하하^.^;;

  4. 요즘부쩍짜증 댓글:

    어쩐지 요즘 부쩍 짜증도 나고, 기분도 가라앉고 하더라구요.. 결국엔 마음을 다스릴수 밖에는…ㅠ.ㅠ

    • 색콤달콤 댓글:

      맞아요. 마음이 붕~ 뜨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왠지 모르게 책이 땡기더라구요^^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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