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알토 연구소(PARC)에서 찾은 제록스의 빛나는 ‘창의력’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 ) 즐겁고도 유쾌한 월요일이 밝았습니다! (반어법 아니예요!)


사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월요일에 불어닥치는 폭풍업무를 체감하게 되는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와 창의력만 있으면 그까~이꺼 금방 해결되는 업무도 많습니다.

해서 오늘 에서는 미국 팔로알토 연구소에서부터 이어져 온 제록스의 창의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정보통신의 산 역사’가 담긴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발견한 제록스의 반짝반짝 창의력! 한 번 확인해볼까요? : )


 흔히 ‘파크(PARC)’라고도 불리는 이 연구소는 정보통신 역사에서 ‘혁신’과 ‘창조’의 산실로 통합니다. 개인용 PC인 알토(Alto) 컴퓨터를 비롯해, GUI(Graphic User Interface), 이더넷(Ethernet) 등의 핵심기술이 모두 이 연구소에서 탄생했기 때문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40년간 이들의 연구 성과는 IT산업에 획을 그을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파크’의 출발은 ‘제록스 파크’였습니다. 세계적 프린팅 업체로 명성을 쌓아가던 미국 제록스사에 의해 1970년에 설립된 민간 연구소였던 것입니다. 올해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있는 ‘팔로알토 연구소’에 직접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그곳에서 보았던 ‘파크’의 빛나는 창의력을 <제록스광장>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연구소는 스탠퍼드 대학이 멀지 않은 팔로알토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점은 연구 단지의 독특한 설계였는데, 모든 연구실은 커다란 창을 내어 정원과 초원지대를 바라볼 수 있도록 했고 테라스로 바로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민간 연구소’라는 평가에 걸맞게 일급의 연구진에게 최고의 연구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건축적 배려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출처 : PARC

연구소는 한국 쪽 사업파트너 여럿과 일을 해오고 있지만 방문취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멀리서 온 손님을 반겨주었습니다. 파크에서 21년째 일하고 있는 사업개발 디렉터 ‘제니퍼 언스트’를 만나니, 놀랍게도 한글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건넸습니다. 한국 기업과의 접촉이 그만큼 잦다는 뜻이겠죠.

지난 40여 년간 ‘파크’가 이뤄낸 성취 목록은 그야말로 화려했습니다. 연구소에서 가장 먼저 안내받은 곳은 개인용 컴퓨터(PC)의 효시로 불리는 ‘알토(Alto)’가 있는 방이었습니다. 알토는 제록스 파크가 1973년 그래픽 사용자 환경(Graphic User Interface)을 처음 개발해 제품화한 PC입니다. 전시실에 있는 모델은 알토1은 아니었고, 알토2로 1979년판 사용설명서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제록스 파크는 이 알토 컴퓨터를 상업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GUI가 IT산업에서 꽃을 피운 건 1980년대 초반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MAC)와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에 의해서입니다. 1979년 스티브 잡스가 파크를 방문해 알토의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접한 게 매킨토시의 탄생 배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8년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를 베꼈다고 소송을 걸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실은 우리 둘 다 제록스의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훔쳐다 쓴 거 아니냐”고 반박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통신 환경에서는 90% 이상이 이더넷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
출처 : PARC 

다음으로 안내된 방은 근거리네트워크(랜) 규약인 ‘이더넷’이 처음으로 설치된 장소였습니다. 네트워크의 위력을 말해주는 ‘멧칼프의 법칙’을 주장한 ‘로버트 멧칼프’가 1970년대 바로 이 방에서 이더넷이라는 근거리네트워크의 표준 기술을 개발한 것입니다. 이 ‘이더넷’ 덕택에 제록스 파크는 당시 연구실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전자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복도에는 1991년 개발된 태블릿PC ‘파크패드’가 전시돼 있었습니다. 파크패드는 애플의 아이패드보다 19년 먼저 제록스파크가 개발한 것으로, 미래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 연구를 위해 만들어 연구소 안에서만 실험적으로 사용했습니다. 파크패드는 외관상 보기에는 요즘의 태블릿PC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습니다. 당시에는 무선인터넷이 없었을 테니 유선으로 인터넷에 연결하는 점과 터치스크린이 아닌 스타일러스 펜 타입으로 조작한다는 점, 두께가 약간 두껍다는 점, 배터리가 4시간 정도라는 점 등이 차이였습니다.

이 밖에도 레이저프린팅, 유비쿼터스 컴퓨팅, 분산컴퓨팅, 상용 마우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피디에이(PDA) 등 현재 사용되는 정보기술 상당수가 이곳에서 개발됐습니다. 한 민간기업 부설연구소에서 이런 핵심적인 정보화 기술들을 개발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레이저프린팅을 빼고는 나머지 기술을 상업화로 연결하지 못한 점은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팔로알토 연구소 복도에 전시된 ‘파크’의 기념비적 발명품들
출처 : PARC 

연구소 복도 한 곳에는 ‘파크’의 기념비적 발명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벽면에는 이곳에서 연구하던 유명한 컴퓨터 공학자 ‘마크 와이저’의 말이 있었는데, 다가가서 보니 “기술이 진보하면 안으로 숨는다”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개념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록스의 다양한 혁신에도 이들이 상품화되지 못한 게 살짝 이해가 되었습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위해 만들어진 PDA와 태블릿은 하나의 개념 구현 수단이었습니다. 미래의 사무환경과 업무환경이 어떻게 근본적으로 달라질지 큰 차원에서 고민하던 1970~1990년대에, 파크는 PC나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절대적 도구로 보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파크’는 2002년 제록스 부설연구소에서 별도의 연구전문 회사로 변신했고, 기술의 상업화 등 마케팅 요소를 도입했습니다. 이후 파크는 바이오메디컬, 클린테크 등의 영역을 추가하고 외부 기업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날 저를 안내해 준 ‘제니퍼 언스트’에게 “파크에서 숱한 혁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물었더니 그는 3가지를 지목했습니다. “다양한 영역의 연구자들이 모여 통합적 연구를 하는 ‘학제간 연구’, 3~7명 작은 팀 단위로 진행되는 ‘공동연구’, 기술의 상업화를 고려한 ‘연구문화’가 특징”이라며 “초기의 잇따른 실패를 견뎌낼 수 있는, 실패에 관용적인 문화와 인내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3가지 원칙이 있었기에 제록스 파크였던 시절에도, 독립연구소로 변신한 이후에도 ‘파크’가 혁신과 창의력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1970 제록스 부설연구소로 설립 

1971 레이저 프린팅 기술 : PARC의 대표적 상업화 성공

1972 사례객체지향 프로그래밍 : 프로그램설계 단순화와 생산성에 큰 기여

1973 개인용 워크스테이션 컴퓨터 알토(Alto) : 이후 PC의 모델이 됨

1973 이더넷(Ethernet) : 현 근거리네트워크의 표준

1974 위지위그(WYSIWYG) : 화면에 보이는 대로 인쇄되는 기능

1975 그래픽 사용자 환경(GUI) : 애플의 맥, MS 윈도에서 상업화 성공

1979 자연언어 처리기술유비쿼터스 컴퓨팅 : 이 개념의 실현을 위해 연구소 내에서 PDA, 파크패드 개발

1988 연구소 내에서 실제 사용1991 태블릿 파크패드 : 디지털 콘텐츠 소유권 보호독립 법인으로 새 출발

2000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도구 : 대주주 제록스2002

2011 새로운 최고경영자로 스티브 후버 부임(2월)

출처 : PARC

글/사진 구본권 한겨레 신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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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이 세상을 만드는 힘이다!’ Better Communication을 위해 노력하는 후지제록스의 철학과 혁신, 기업문화, 사람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3 Comments

  1. 혁신말하길

    놀랍도록 많은 기술들이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시작되었네요. 상업화만 잘 되었더라면, 제록스에서 아이패드와 같은 혁신적인 제품이 나와 세상을 뒤흔들었을까요?

  2. FX말하길

    이 얘기, 부장님한테 들은적있어요!! 한국에선 이렇게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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